Register 2024.05.02 (Thu) KOREA Edition
전체메뉴보기

JOY

조선시대 ‘공주’가 시집을 가면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송고시간 2020.06.02 17:00


(이미지 : 유튜브 교양만두 영상 갈무리)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조상숭배, 내외사상, 장유유서 등 유교 사상이 뛰어난 나라였다. 조선시대까지 ‘왕’이 존재한 나라에서 공주와 결혼을 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동화책에서 그랬듯이 공주와 결혼하면 단순히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아니면 당시 여성들이 그랬듯이 일종의 시집살이를 겪었을까? 해당 궁금증을 유튜브 교양만두가 영상을 통해 풀어냈다. 
 
조선시대 공주는 일종의 간택제를 통해 신랑감을 선정했다고 한다. 우선 공주가 결혼할 시기가 되면 전국의 공주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금혼령이 떨어지고 지원자를 대상으로 심사가 들어갔다고 한다.
 
지원 서류에는 본인의 이름과 나이 본관은 물론 혈통을 중시하는 나라 답게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까지 모두 이름을 적어 냈다고 한다. 심사에서는 왕족과 동성동본이거나 질병이 있거나 부모 중 한쪽 사람이 없으면 통과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특이한 점은 높은 벼슬의 자제보다 비교적 낮은 벼슬의 자제가  통과되었다고 한다. 이는 사돈이 될 집안이 권력을 넘보는 등의 행동을 하지 못하게 미리 차단시킨 행위였다고 한다.
 
공주의 남편이 되면 당연히 왕실 식구로서 대접받는 것은 물론 일을 안해도 월급이 나왔다고 한다. 아울러 대대손손 왕족의 신분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관직에서 정치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공주는 국가가 마련해준 신혼집에서 사는 것은 물론 시종과 각종 살림살이도 보장해주어 먹고 살 걱정은 없었다고 한다. 물론 시댁 역시 며느리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공주의 집안이 한양 내에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공주가 상소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주 역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라 막무가내로 예의없이 구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결론은 공주는 결혼을 해도 왕실의 보호아래 좋은 대우를 받은 것은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왕실의 어른으로 꾸준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후손이 없는 것을 큰 불효라고 여겼기에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 시대였다. 아울러 남자들은 본처 외에도 첩을 둘 수 있었던 반면 여자들은 평생 한 남편만 섬기고 살아야 하는 일부종사 제도를 유지했다. 과부들의 재가도 금기 시 되었다.  
 
 

기사인쇄 | 김인하 기자 press.series@gmail.com

플레이플러스 댓글 토크0

* 최대 200자까지 작성가능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0/20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4033

Follow 플레이플러스